'지렁이는 어떻게 앞뒤를 구별할까'라는 방학숙제가 알려준 학습효과, 답을 찾는 과정이 길수록 지식의 폭과 깊이가 확장된다
예전 초등학생 시절 방학이 되면 늘 두툼한 과제 책자가 하나씩 손에 쥐어졌습니다. 신나는 방학인데도 늘 숙제의 늪을 빠져나오질 못했던거죠. 그 책자안에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렁이의 앞뒤는 어떻게 구별할까요. 그때는 컴퓨터도 없고 검색이라는 말조차 낯설던 시절이라, 이 질문 하나의 답을 찾기 위해 과학전집이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책을 뒤져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답 하나를 구하기 위해 꽤 진지하게 움직였습니다. 도서관도 마땅치 않던 동네였기에, 과학전집이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아이들이라면 스마트폰 하나로 몇 초 만에 끝날 일이지만, 그때는 답 하나를 얻기까지 발품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친구네 책장 앞에 앉아 책을 뒤지던 그 시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렁이 항목을 찾으려고 목차를 넘기다가, 우주 이야기에 눈길이 가고, 동물 편에서 또 다른 궁금증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원래 찾던 답은 잠시 뒷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참을 헤맨 끝에 답을 찾았을 때는, 지렁이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그 옆에서 우연히 읽은 다른 과학 지식들까지 함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어 단어를 찾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두꺼운 영한사전을 펼쳐야 했는데, 알파벳 순서를 따라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앞뒤에 있는 다른 단어들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찾은 단어는 스펠링까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처럼 검색창에 입력하고 클릭 한 번으로 뜻만 확인했다면, 아마 며칠 지나지 않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어렵게 찾은 답이 오래 남는 이유
이런 경험이 단순한 추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어려움이라는 이론인데, 학습 과정에 적당한 어려움이 있으면 당장은 습득 속도가 느려 보여도 장기적인 기억과 활용 능력은 오히려 더 좋아진다는 내용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심리학자 로버트 비요크는, 너무 쉽게 얻은 정보는 뇌가 굳이 힘들여 저장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이 이론 안에는 생성 효과라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답을 그대로 받아보는 대신 스스로 답을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과정 자체가, 설령 그 과정에서 틀린 답을 내놓더라도 이후의 학습 효과를 높인다는 것입니다. 지렁이의 앞뒤를 찾기 위해 책장을 뒤지고,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 헤매던 그 모든 과정이 바로 이 생성 효과에 해당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어려움이 무조건 클수록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학습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정보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 효과가 사라지거나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즉 무작정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시도해볼 수 있는 수준의 어려움을 마련해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 구분 | 쉬운 검색 | 어렵게 찾는 과정 |
|---|---|---|
| 답을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 | 수 초 | 수 분에서 수십 분 |
| 함께 얻는 정보 | 질문한 정보 하나 | 주변 정보, 연관 지식 |
| 기억 지속성 | 비교적 짧음 |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 |
지금 아이들의 검색 환경, 무엇이 다른가
지금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검색창에 입력하고 몇 초 안에 답을 확인합니다. 정보 접근성만 놓고 보면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환경입니다. 다만 이 편리함이 학습이라는 관점에서는 다른 문제를 만듭니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주변 지식과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직접 헤매며 답을 구성해보는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색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검색 이후에 부모가 던지는 질문 하나가 이 과정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검색으로 답을 찾아왔을 때, 정답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대신 그 답이 왜 그런지, 비슷한 다른 사례는 없는지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짧은 되짚음이 생성 효과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학습지나 문제집을 풀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바로 정답을 보여주기보다, 아이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추측해볼 시간을 먼저 주는 것입니다. 틀린 추측이라도 그 추측을 해보는 과정 자체가 정답을 그냥 듣는 것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점을 앞서 살펴본 이론이 뒷받침해줍니다.
| 상황 | 단순 검색 후 반응 | 과정을 살리는 반응 |
|---|---|---|
| 과학 질문 | 답만 확인하고 종료 | 왜 그런지 아이에게 되물어보기 |
| 단어 뜻 질문 | 뜻만 알려주고 넘어감 | 비슷한 단어나 예문 함께 찾아보기 |
가정에서 해볼 수 있는 작은 시도
아이가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검색부터 시키기보다, 먼저 스스로 답을 추측해보게 하는 시간을 한 번 넣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추측해본 뒤 검색으로 확인하는 순서만 바꿔도, 답을 그냥 받아보는 것과는 다른 기억이 남습니다.
그 시절 과학전집이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책을 뒤지던 경험이 그리운 것은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안에는 지금의 편리한 환경이 놓치기 쉬운, 스스로 헤매고 부딪히며 지식을 넓혀가던 과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검색이 빨라진 시대일수록, 그 과정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되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지도 모릅니다.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루에 한 번, 아이가 무언가를 물어볼 때 곧바로 답을 검색해주는 대신 잠깐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멈춤이 쌓이면, 아이의 머릿속에는 단순한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이해가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함께 챙겨볼 포스팅 '조용한 곳에서 책 한 페이지도 제대로 못 읽었는데,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도 집중 독서를 쉽게 할 수 있는 한 달의 변화 과정'

댓글
댓글 쓰기